지난 주 백악관 기자회견 만찬에서 무장 후 보안 장벽을 돌파하려던 캘리포니아 출신 31세 남성 콜 앨런이 대통령 암살 미수 혐의로 공식 기소됐다. 사건의 전말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가 실제로 총을 발포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한 가지는 분명하다. 대통령을 암살하려는 시도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살인이라는 행위가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없으며, 법적으로도 중죄라는 사실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미국의 대통령은 24시간 무장한 경호원들의 엄중한 보호를 받고 있어 암살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설령 성공한다 해도 그 결과는 katastrofisch(파멸적)일 수밖에 없으며, 과거의 삶을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시대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는 더 깊이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과연 대통령을 암살하는 것이 상황을 개선할 수 있을까? 그리고 분노를 표출할 더 나은 방법은 없을까?

도덕적 상처에서 비롯된 극단적 선택

앨런의 경우 전형적인 대량 살인범과는 달랐다. 그는 영웅심을 추구하지 않았고, 과격한 언사를 내세우지도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사과하는 등 도덕적 책임을 느끼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또한 보안 장벽을 뚫기 전에 이미 실패할 것이라는 자조적인 태도까지 드러냈다.

가장 주목할 점은 그가 암살 시도를 정당화한 이유가 도덕적 상처(moral injury)에 기반했다는 사실이다. Elizabeth Spiers는 이 같은 동기를 '도덕적 상처'로 규정하며, 특히 군 복무 후 PTSD를 겪는 퇴역 군인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으로 설명했다.

David Wood는 도덕적 상처를 '자신의 도덕적 가치관이 무너졌다는 느낌과 그에 따른 슬픔, 무감각, 죄책감'으로 정의했다. 앨런은 자신의 선언문에서 “나는 미국 시민이다. 나의 대표자들이 행하는 일들은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강간범이자 반역자인 pedophile(소아성애자)를 내 손으로 더럽히고 싶지 않다”라고 밝혔다.

그는 “다른 이가 억압받을 때 모른 척하는 것은 기독교적 행위가 아니라, 압제자의 범죄에 동조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하며, 자신이 트럼프의 부패와 무능에 연루되었다고 느꼈다고 밝혔다.

‘도덕적 상처’가 낳은 폭력, 그 위험한 연쇄

이 사건이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바로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더 있을 수 있으며, 그들마저도 같은 극단적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현재 미국의 엘리트층이 처벌 받지 않는 부패와 보복 정치가 만연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결과다. 정의가 지연되고, 권력이 오용되는 사회에서 분노는 폭발 직전까지 치닫고 있다.

정부가 공정성을 회복하지 못하고, 권력층의 무책임이 지속된다면 이와 같은 비극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앨런의 사례는 단순히 한 개인의 극단적 선택을 넘어, 사회 전체가 직면한 도덕적 위기의 신호탄일지도 모른다.

대통령 암살 시도, 그 대안은 무엇인가?

대통령 암살은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분노를 표출하고,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 정치적 참여와 투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선택하고 책임을 물을 수 있다.
  • 시위와 여론 형성: 평화로운 시위를 통해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며, 미디어와 공공의 관심을 유도할 수 있다.
  • 법적 대응과 감시: 부패한 권력에 맞서 법적 절차를 통해 투쟁하고, 시민단체 등을 통해 감시 활동을 강화할 수 있다.
  • 사회적 연대와 교육: 도덕적 가치를 공유하고, 올바른 시민 의식을 함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앨런의 선택은 결코 용납될 수 없지만, 그의 행동 뒤에는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사회의 도덕적 균열이 존재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분노를 넘어, 시스템 자체의 개혁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