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 불타는’ 그림으로 시작된 예술가의 저항

2011년 여름, 로스앤젤레스 밴 나이스 거리에 easel을 세운 화가 알렉스 쉐퍼는 맞은편 JP모건 체이스 은행 건물을 바라보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그 건물이 불타오르는 장면이 그려졌다. 창문에서 불길이 치솟고, 야자수 위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며, 열기 사이로 체이스 로고가 희미하게 보였다. 인상파 화가들이 센강과 밀밭에서 스케치를 하던 방식 그대로, 그는 야외에서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그의 대상은 미국 최대 은행의 지점이었다. 그리고 그 은행은 공공자금으로 구제된 지 불과 3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지나가던 한 행인이 경찰에 신고했고, 쉐퍼는 체포되었다. 하지만 그의 그림 ‘Banks on Fire’는 이베이에서 독일 коллек터에게 2만5천200달러에 팔렸다. 그는 이 작품을 시작으로 같은 시리즈를 계속 그렸다. 비트코인 2026에서 열린 ‘Relics of a Revolution’ 전시회에서 선보인 이 작품들은 거리의 저항부터 비트코인 탄생에 이르기까지 금융 시스템에 대한 저항의 계보를 잇고 있다.

예술가들의 ‘불’로 점철된 저항의 계보

쉐퍼의 ‘은행 방화’ 시리즈는 같은 계보에 속한 다른 예술가들의 작품들과 연결된다. 도쿄 눈길에서 콜린 버지스가 그린 그림, 로스앤젤레스 고가도로에 wheat paste로 붙인 mural을 그린 미어 원, 오하이오 경찰의 강제 수색에 맞서 노래와 깃발을 든 아프로맨의 행동까지. 쉐퍼의 작품은 예술사적 맥락에서도 주목받았다. 비평가들은 그의 작품을 에드 루샤의 ‘Los Angeles County Museum on Fire’(1965~68)와 연결 지었다. 루샤는 문화기관을 불태우는 그림을 그렸고, 그 그림은 미술관 벽에 다시 걸렸다. 쉐퍼는 미술관을 은행으로, 오일 쇼크 시대를 구제금융 시대로 바꾸었고, 스튜디오가 아닌 은행 건물 앞에서 그림을 그렸다는 점에서 차별화됐다. 이 때문에 로스앤젤레스 경찰은 그에게 다가가 “테러리스트가 아니냐”고 물었다. “어떤 사람들은 은행이 테러리스트라고 말할 수도 있어요.” 그가 대답했다.

2012년 7월, 그는 다운타운 체이스 은행 앞에서 ‘Crooks(사기꾼)’이라는 낙서를 하고 체포됐다. 미성년자 낙서죄로 12시간을 구금당한 그는 이 사건 이후에도 ‘은행 방화’ 시리즈를 계속 그렸다. 1969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난 쉐퍼는 패서디나의 ArtCenter College of Design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그는 8년간 디지털 아티스트로 활동하며 ‘Spyro the Dragon’ 시리즈 원화 작업에도 참여했다. 이후 화실로 돌아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같은 학교에서 회화와 드로잉, 구성 기초를 가르쳤다.

다운타운 LA, 금융 시스템의 ‘스트레스 테스트’가 된 거리

미어 원과 마찬가지로 쉐퍼는 다운타운 로스앤젤레스에서 오랫동안 작업했다. 이 지역은 10년간 지속된 미국 내 불안의 중심지였다. 시청 lawn에 Occupy LA가 천막을 치고, 2012년 전국적인 크레용 протест가 다운타운 체이스 은행 앞에서 한창이던 때였다. 5번가와 샌줄리안가 교차로 주변은 구제금융으로 ‘고쳐졌다’고 주장하던 시스템이 버텨내야 했던 스트레스 테스트의 현장이었다. 쉐퍼의 ‘은행 방화’ 시리즈는 이 모든 역사의 한가운데에서 탄생했다.

“예술은 때로는 시스템의 모순을 가장 날카롭게 지적하는 도구가 된다. 쉐퍼의 그림은 단순히 예술작품이 아니라, 금융 시스템에 대한 분노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