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AI 산업의 리더들은 현대 미국 경제사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운 ‘AI-induced shock’이 다가오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스탠퍼드 대학교 경영대학원 겸 후버 연구소(Hoover Institution) 연구원 앤디 홀(Andy Hall)은 AI가 일으킬 ‘유례없는 고통’을 강조하며, AI가 5년 내에 모든 entry-level 화이트칼라 일자리 절반을 대체하고 실업률을 10~20%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같은 전망은 AI 기업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오픈AI(OpenAI)와 앤트로픽(Anthropic)은 최근 ‘사회계약서’를 담은 정책 메모를 발표하며, AI 시대(AGI 시대)의 경제 체계를 재설계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들은 주당 근무 시간 단축, 공공 부富 펀드 설립, 현대화된 세제 개혁 등을 제안하며 ‘풍요로운 시대’의 도래를 예고했다. 그러나 기술계의 이러한 선제적 접근이 미국 정치 현실에서 통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일자리 없는 번영’의 정치학
앤디 홀은 AI가 초래할 경제적 혼란을 ‘산업 혁명’이나 ‘중국 쇼크’와 비교했다. AI 시대에는 소수의 엘리트 계층이 부를 독점하는 반면, 다수의 노동자는 배제되는 ‘일자리 없는 번영’이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상황에서는 경제 성장과 실업률 상승이 동시에 발생할 수 있으며, 이는 전통적인 경기 침체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정치적으로도 큰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앤디 홀은 “유권자들은 축소되는 경제가 아니라, 급성장하는 경제에서 배제된 데 분노할 것”이라며, “이들은 번영의 기회를 차단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미 미국의 정치 문화는 ‘반엘리트’와 ‘니힐리즘’으로 기울어지고 있으며, AI 억만장자들에 대한 반감이 점차 정치적인 분노로 변모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기술계의 선제적 접근, 과연 실효성 있을까?
AI 기업들은 이러한 문제를 미리 인지하고 정책 메모를 통해 redistribution(재분배) 체계를 제안하고 있다. 이는 redistribution의 주체가 되는 부유층이 스스로 redistribution을 수용한다는 점에서 ‘선제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제 정치 현실에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첫째, 사회계약은 ‘강자’가 ‘약자’에게 일방적으로 내리는 것이 아니라, ‘약자’가 ‘강자’로부터 끌어내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AI 시대에도 기술계가 제안하는 사회계약이 공공의 동의 없이 강제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다. 둘째, AI가 초래할 경제적 변화는 아직 명확히 예측되지 않았다. AI가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지조차 불확실한 상황에서, 기술계의 정책 제안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분석이다.
“AI가 초래할 경제적 충격은 예측 불가능하며, 기술계의 선제적 접근은 정치적으로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 — 앤디 홀(Stanford Graduate School of Business, Hoover Institution)
전문가들의 상반된 전망
일각에서는 AI가 초래할 일자리 감소에 대한 과장된 우려를 지적하기도 한다. 시카고 대학교 부스 경영대학원 교수 알렉스 이마스(Alex Imas)는 저서 ‘What will be scarce?’에서 AI가 단기적으로는 실업률을 상승시킬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새로운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AI가 scarcity(희소성)을 재정의할 것”이라며, 기술 발전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겠지만, 경제적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AI가 초래할 사회적 혼란에 대한 우려는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AI 스타트업 ‘에이닷(AiDA)’의 공동창업자 재스민 손(Jasmine Sun)은 “미국 정치 문화의 반엘리트주의와 니힐리즘이 AI 억만장자들에 대한 분노로 변모하고 있다”며, “이러한 분노가 정치적으로 표출될 경우, AI 산업의 성장이 제약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결론: AI 시대의 정치,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AI가 초래할 경제적·정치적 변화는 아직 명확히 예측되지 않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AI 시대에는 ‘일자리 없는 번영’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며, 이는 전통적인 정치 체제에 큰 도전으로 작용할 것이다. 기술계가 제안하는 사회계약이 정치적으로 수용될지는 미지수지만, AI가 초래할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은 이미 시작됐다.
앤디 홀은 “AI가 초래할 변화는 예측 불가능하지만, 우리는 이를 준비해야 한다”며, “정치적·경제적 시스템을 재설계하는 데 있어 기술계와 정책 입안자, 시민사회가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