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6년 7월 4일, 필라델피아에서 미국 독립선언서가 채택되었다. 이 선언은 단순히 역사적 문서가 아니었다. 당시 대륙회의 대의원들은 이 선언이 전 세계로 퍼져나갈 ‘뉴스’가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학계는 오랫동안 미국 독립을 역사적 사건으로만 다루었을 뿐, ‘뉴스’로서의 성격은 간과해왔다. 옥스퍼드대학出版社의 새로운 연구서 <독립선언서가 뉴스였을 때>(When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Was News, 에밀리 스네프 저)는 이 공백을 메우고자 한다.

저자 에밀리 스네프는 1776년 5월부터 1777년 1월까지의 시기를 집중 조명한다. 이 기간은 미국 독립의 소식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 excitement(흥분), anger(분노), delight(기쁨), confusion(혼란)을 일으킨 때였다. 특히 5월 15일 대륙회의가 통과한 ‘독립 권고안’이 오보로 이어진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이 안건은 유럽 각국 신문에 실렸으며, 포르투갈 국왕 조제 1세는 이를 근거로 미국 식민지가 영국 통치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오해했다. 결국 그는 7월 4일—미국 독립선언서가 발표된 바로 그날—미국 식민지와 포르투갈의 무역을 금지하는 칙령을 발표했다.

뉴스의 전파와 왜곡: 각국의 반응

스네프는 독립선언서가 필라델피아에서 유럽, 북미 전역으로 퍼져나가는 과정을 추적한다. 그러나 이 뉴스는 각국에서 다르게 해석되었고, 심지어는 의도적으로 왜곡되기도 했다. 영국 신문의 경우, 반역죄 혐의를 피하기 위해 ‘폭정’이나 ‘폭군’이라는 단어는 삭제되었고, ‘왕실’을 가리키는 단어는 이니셜이나 대시(—)로 대체되었다. 이처럼 영국 신문의 수정판은 유럽 대륙으로 전해졌고, 현지 신문에 영향을 미쳤다.

미국 내에서도 오보와 편집 오류가 빈번했다. 매사추세츠 스파이(Massachusetts Spy) 신문에 실린 독립선언서에는 오타와 편집 실수가 많았다. 예를 들어 ‘We hold these truths to us self-evident…’(우리는 이 진리를 우리 자신에게 자명한 것으로 삼는다…)라는 문장이 ‘to us’로 잘못 표기되었다. 스네프는 이러한 오류가 필라델피아에서 배포된 공식 버전이 아니라, 선언서를 낭독하는 장면을 듣고 필사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지역적 편견과 뉴스의 Reception

독립선언서의 뉴스는 각 지역과 개인의 입장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졌다. 필라델피아의 소식이 멀리 떨어진 지역까지 전파되는 데는 시간차가 있었고, 영국군의 통신 방해로 인해 정보 전달이 중단되기도 했다. 선언서가 공개적으로 낭독될 때joyful celebration(기쁨의 축하)가 열리기도 했지만, 반대로 이 소식을 반기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특히 왕당파와 영국 교회 신부들은 왕실에 대한 충성 맹세를 했기 때문에, 독립선언이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스네프는 이 책을 통해 독립선언서가 단순히 역사적 문서가 아니라, ‘뉴스’로서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 사건을 재조명한다. 그녀의 연구는 독립선언의 역사적 의미를 넘어, 미디어와 정보의 전파가 역사적 사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준다.

출처: Rea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