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의 덫’이 여성 리더십을 가로막는 이유
권력은 진보를 좁히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 좁아짐은 일정한 패턴을 따라 반복된다. 한 여성 직원의 경험에 따르면, 후배 직원이 팀에 합류하면서 자신이 제안한 아이디어와 작업을 무단으로 자신의 것으로 만든 적이 있었다. 같은 사고방식과 프레임워크였지만, 소유권만 달랐다. 이 문제를 제기했을 때, 상대방의 ‘선한 의도’를 가정하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책임을 묻자 ‘화를 내는 것 같다’는 핀잔을 들었다.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았고, 시스템은 이 같은 논리를 반복해왔다. 선한 의도가 책임의 대안이 되는 순간, 불평등은 구조화된다.
미국에서 여성은 대학 졸업자의 과반수를 차지하고 남성과 거의 동등한 비율로 직장에 진출한다. 그러나 기업의 C-level 직책 중 여성 비율은 약 29%에 불과하다. 맥킨지의 Women in the Workplace 연구에 따르면, 입사 후 관리직 승진 단계에서 남성은 100명 중 87명이 승진하는 반면, 여성은 87명에 그친다. 이 격차는 이후 직급으로 갈수록 더 벌어지며, 파트너십과 임원직으로 갈수록 여성의 존재감은 현저히 줄어든다. 문제는 인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불평등이 지속될 수 있도록 허락하는 시스템의 허점이 문제다.
‘인식-책임 격차’의 세 가지 패턴
이 문제를 ‘인식-책임 격차’라고 명명할 수 있다. 조직은 불평등에 대한 인식을 갖지만, 이를 실질적인 결과로 연결하지 못한다. 이 격차는 세 가지 reinforcing 패턴으로 나타난다.
1. 공감의 천장: 공감이 리더십의 끝이 되는 순간
리더가 언어나 정체성, 혹은 의도를 통해 ‘공감’을 표명하면, 더 이상 그 행동에 대한 scrutiny(면밀한 검토)가 이뤄지지 않는다. ‘잘 이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리더는 여성의 채용과 승진 결과가 변함에도 불구하고 덜 비판받는다. 공감은 리더십의 시작점이어야 하지만, 종종 끝점으로 둔갑한다. 이로 인해 실제 변화는 일어나지 않으면서 ‘공감하는 리더’라는 허상만 남는다.
2. 의도 과장: 선한 의도의 대가로Actual 결과는 무시
조직은 리더의 ‘의도’를 과도하게 칭찬하면서, 무활동의 대가를 과소평가한다. 리더가 옳은 가치를 표명하면 성과와 무관하게 칭찬을 받는다. 의도가 결과와 분리되면, 개입은 선택사항이 된다. ‘우리는 노력하고 있다’는 말만으로도 책임은 소멸되고, 불평등은 방치된다.
3. 모호성의 전가: 책임의 공백을 중간 관리층이 떠안는 구조
명확하지 않은 소유권이 ‘보이지 않는 정리 노동’으로 전가된다. 이 일은 공식적인 권한이 없는 중간 관리층, 특히 여성에게 주로 떨어진다. 이들은 전략을 실행으로 옮기며, 인적 갈등과 일정 지연, 기능 간 혼란을 관리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비즈니스 개발 대화나 전략적 기회에서 배제되며, 승진을 위한 후원(sponsorship)을 얻지 못한다. 맥킨지 연구에 따르면, 입사 초급 여성 중 후원자를 둔 비율은 31%에 불과한 반면, 남성은 45%에 달한다.
왜 이 시스템은 스스로를 유지하는가?
‘성장 루프’라는 개념이 있다. 특정 행동이 보상받고 강화되면서 스스로를 지속시키는 구조다. 인식-책임 격차도 마찬가지다. 조직은 ‘공감’과 ‘의도’를 칭찬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실제 변화는 방치한다. 이 루프는 다음과 같이 작동한다:
- 보상 체계의 왜곡: 리더의 의도와 말만으로 평가가 이뤄지면, 실제 성과와 무관한 평가가 지속된다.
- 책임의 희석: 모호한 소유권이 중간 관리층에 전가되면서, 책임 소재가 흐려진다.
- 기회의 배제: 여성은 전략적 대화와 후원 기회에서 배제되면서, 리더십 진입 자체가 어려워진다.
이 시스템은 ‘선한 의도’와 ‘공감’을 무기로 삼아 불평등을 영속시킨다. 변화는 의도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책임에서 시작해야 한다.
해결의 실마리: 책임의 재설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은 ‘책임’의 재정의다. 리더의 의도와 말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다음과 같은 변화가 필요하다:
- 명확한 성과 연동: 리더의 평가는 의도나 말뿐 아니라, 실제 결과와 연동되어야 한다. 여성의 승진과 리더십 진입이 증가했는지 여부가 평가의 핵심 지표가 되어야 한다.
- 소유권의 투명성: 모호한 책임은 조직의 책임 회피로 이어진다. 소유권과 책임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 후원 체계의 확립: 중간 관리층, 특히 여성에게 전략적 기회와 후원자를 제공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기회 균등’이 아니라, 의도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 피드백 루프의 구축: 리더의 행동과 결과에 대한 정기적인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공감’이나 ‘의도’에 대한 포상은 결과가 뒷받침될 때만 유효해야 한다.
“공감은 리더십의 시작점이지, 끝점이 아니다. 변화는 의도에서가 아니라, 책임에서 시작된다.”
마치며: 시스템의 전환을 위한 첫걸음
여성의 리더십 진입을 가로막는 장벽은 개인의 능력 부족이 아니다. 시스템이 의도와 공감을 무기로 삼아 불평등을 영속시키는 구조적 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리더의 말과 의도뿐 아니라, 실제 결과와 책임이 연동되는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공감의 덫’이 아닌, 실제 평등을 위한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