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이 2024년 6월 27일 투표권법(Voting Rights Act) 관련 역사적인 판결을 내렸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을 비롯한 사무엘 알리토, 클래런스 토머스, 브렛 캐버노 등 보수 성향 4인의 대법관은 투표권법 제2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며, 인종 차별적 선거법에 대한 제소 기준을 완화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 판결은 투표권법의 핵심 조항인 '제2조'가 연방정부가 아닌 개인이나 단체가 선거법의 차별적 적용을 제소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근거가 된다는 기존 법리 해석을 뒤집은 것이다. 연방대법원은 이제 개인이 투표권 침해 여부를 두고 연방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밝혔다.

투표권 보호의 역사적 전환점

1965년 제정된 투표권법은 흑인 및 소수 인종에 대한 투표 차별을 금지하는 법으로, 미국 시민권 운동의 핵심 성과였다. 특히 제5조는 특정 주에 대해 연방정부의 사전 승인 없이 선거법 변경을 금지하는 '선제적 승인 제도(preclearance)'를 도입해 인종 차별적 선거법의 확산을 막았다. 그러나 2013년 셸비 카운티 대홀더 판결로 제5조가 사실상 무력화된 이후, 투표권 보호는 점차 약화되어 왔다.

이번 판결은 제5조가 무력화된 후 남은 마지막 보루였던 제2조를 사실상 무력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판결문에서 "제2조는 연방정부가 특정 선거법이 차별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지만, 개인이 직접 제소할 수 있는 근거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는 투표권 침해 사례에 대한 사법적 구제가 사실상 불가능해졌음을 의미한다.

보수 대법관들의 일관된 입장

로버츠 대법원장을 비롯해 알리토, 토머스, 캐버노 등 보수 성향 대법관들은 이번 판결을 통해 투표권 보호의 범위를 축소하는 데 일조했다. 특히 클래런스 토머스는 지난 2013년 셸비 카운티 판결에서도 제5조를 무력화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던 바 있다.

반면 엘레나 케이건, 소니아 소토마요르 등 진보 성향 대법관들은 이번 판결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이 판결은 투표권을 보호하기 위한 수십 년간의 노력을 무위로 돌릴 수 있다"며 "미국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미래 선거 제도의 변화 가능성

이번 판결은 향후 미국 각 주의 선거법 제정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공화당이 장악한 주를 중심으로 인종 차별적 선거법이 재등장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예를 들어, 투표소 접근 제한, 우편투표 제한, 선거인 명부 관리 강화 등 소수 인종의 투표 참여를 억제하는 정책들이 다시금 등장할 수 있다.

민주당과 시민단체들은 이번 판결에 대해 "미국 민주주의의 후퇴"라며 강력한 규탄을 이어가고 있다. 반면 공화당 측은 "선거의 공정성과 무결성을 위한 합리적 조치"라고 옹호하고 있다.

"이번 판결은 투표권을 보호하기 위한 수십 년간의 노력을 무위로 돌릴 수 있으며, 미국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결정이다."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

미국 내에서는 이번 판결이 2024년 대선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스윙스테이트(경합주)에서의 투표권 분쟁이 더욱 치열해질 가능성이 커졌다. 시민단체들은 투표권 보호 운동을 강화하고, 입법적 대응을 모색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