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난징대 생화학자 연인(殷欣)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쥐를 대상으로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장쑤성(江蘇省) 어느 밝은 오후, 연구원은 한 마리씩 쥐를 미니 트레드밀에 올려놓았다. 트레드밀은 천천히 시작해 점차 속도를 높였고, 쥐들은 평균 실험용 쥐보다 훨씬 멀리 달릴 수 있었다. 젖을 떼지 않은 형제 쥐들이었지만, 젖산 축적량이 적어 지구력이 뛰어났던 것이다.
이 쥐들의 놀라운 체력은 유전자 변형이나 특별한 훈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같은 유전적 배경을 가진 대조군 쥐들과 동일한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이들의 뛰어난 지구력이 아버지 쥐의 운동 습관에서 기인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는 운동이 운동을 하는 당사자뿐 아니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식에게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다.
연 박사는 “처음 데이터를 봤을 때 정말 놀랐다”며 “아버지의 운동이 자식의 RNA 발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라고 밝혔다.
RNA 발현 조절 메커니즘 밝혀져
연구팀은 쥐의 정액에서 미세RNA(microRNA)를 분석한 결과, 아버지 쥐가 규칙적으로 운동할 경우 특정 miRNA의 발현이 증가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 miRNA는 수정란의 RNA 발현을 조절해 자식 쥐의 근육 발달과 대사 기능을 향상시키는 역할을 했다. 특히 miR-133과 miR-181 같은 분자들이 자식 쥐의 지구력 향상에 기여한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 결과는 《Cell Metabolism》지에 실렸다. 이는 부모의 생활 습관이 자식의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미친다는 ‘후성유전학(epigenetics)’ 연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간에게도 적용될까?
연구팀은 쥐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인간에게도 유사한 메커니즘이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아버지 또는 어머니의 운동 습관이 자녀의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임신 전 부모의 건강 관리가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만 인간을 대상으로 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한계점도 제시했다.
연 박사는 “이번 연구는 후성유전학적 변화가 세대를 넘어 전달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며 “건강한 후손을 위해 부모의 생활 습관 개선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후성유전학의 새로운 가능성
후성유전학은 유전자 서열의 변화 없이 DNAmethylation(DNA 메틸화)이나 히스톤 변형 등을 통해 유전자 발현이 조절되는 현상을 연구하는 분야다. 그동안 부모의 영양 상태나 스트레스 등이 자식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는 있었지만, 운동이 RNA 발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이번 연구가 처음이다.
연구팀은 앞으로 인간을 대상으로 한 임상 연구를 계획하고 있으며, 운동이 후성유전학적 변화를 유도하는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밝히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이 연구가 실현된다면 비만, 당뇨병 등 대사 질환 예방에 새로운 접근법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