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선거 조작’ 발언이 민주당에 ‘역풍’으로 돌아온 이유

지난 5일 버지니아주에서 민주당이 하원의원 4석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선거구 개편안이 찬성 51%로 통과됐다. 이 개편안은 오는 중간선거 전에 민주당이 유리한 선거구를 그릴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결과가 트럼프의 한 마디 발언으로 인해 오히려 민주당에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갔다는 사실이다.

트럼프는 지난달 버지니아 지지자들과의 전화 회의에서 “선거구 개편(gerrymandering)이 뭔지 아시나요? 그건 좋지 않은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트럼프는 지난해 여름 텍사스주 공화당원들에게 선거구 개편을 통해 하원을 유지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이는 민주당이 이에 대응해 블루스테이트에서 선거구 개편을 추진하도록 만들었다. 한마디로 트럼프가 선거구 개편 ‘군비경쟁’을 시작한 셈이다.

트럼프는 선거구 개편이 공화당에 유리하도록 ‘선거 조작’을 정당화했지만, 정작 자신이 그 발언을 하자마자 민주당이 버지니아에서 승리를 거두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트럼프의 발언은 민주당 측에 ‘선거 조작을 막자’는 메시지로 활용됐다. 개편안 찬성 캠페인의 커뮤니케이션 책임자는 “트럼프가 이 전쟁을 시작했고, 유권자들은 그를 rejecting(거부)하는 방식으로 반응했다”고 밝혔다.

트럼프의 얼굴이 plastered된 광고가 역효과를 낳다

개편안 찬성 캠페인의 마지막 주에 북부 버지니아 지역에서는 트럼프의 얼굴이 등장하는 광고가 집중적으로 방영됐다. 한 관계자에 따르면, “트럼프의 얼굴과 이름이 유권자들에게 끊임없이 노출됐다”며 “특히 우리가 필요로 했던 유권자들에게 그의 모습이 plastered(도배되듯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개편안은 3%p 차이로 간신히 통과됐지만, 북부 버지니아의 인구 밀집 지역(페어팩스, 러던, 프린스 윌리엄, 알링턴, 알렉산드리아)에서 큰 차이로 찬성표가 나왔다. 이 지역들은 총 ‘찬성’ 표의 약 60%에 달하는 160만여 표를 차지했다. 반면 흑인 인구가 많은 피터즈버그, 포츠머스, 햄튼, 뉴포트 뉴스 지역에서는 반트럼프 메시지가 집중적으로 전달됐고, 이 지역들도 2024년 대비 민주당에 더 가까워졌다.

개편안 찬성 측의 마지막 광고는 “트럼프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선거를 조작하고 있다. 버지니아, 우리가 그를 막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트럼프의 발언은 이 메시지를 더욱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꼴이 됐다.

전국적으로 펼쳐지는 ‘선거구 개편 전쟁’의 향방

트럼프의 선거구 개편 촉구로 인해 공화당은 텍사스 등지에서 선거구를 유리하게 개편했지만, 민주당은 캘리포니아와 버지니아에서 새로운 선거구를 확보하는 등 맞대응에 나섰다. 현재까지는 민주당이 공화당보다 1~2석을 더 추가할 것으로 보이며, 플로리다의 재개편 여부에 따라 결과가 바뀔 수 있다.

이번 사태는 트럼프가 선거구 개편을 통해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에 유리하도록 ‘선거 조작’을 지시했지만, 정작 그의 발언이 민주당에 유리한 결과를 낳은 전형적인 역풍 사례다. 그러나 일부 언론은 민주당의 선거구 개편을 ‘원칙에 어긋난다’는 식으로 보도하며 이 같은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예를 들어 뉴욕타임스는 이를 ‘머리가 핑 돌 정도의 변화’라고 표현했지만, 실상은 트럼프의 발언이 초래한 필연적인 결과였다.

트럼프의 발언이 선거 결과에 미친 영향

“트럼프는 선거구 개편 전쟁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그 자신이 그 전쟁에서 패배할 위기에 처했다.”
— 개편안 찬성 캠페인 커뮤니케이션 책임자 댄 골트비츠

트럼프의 선거구 개편 지지 발언은 공화당에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갈 것으로 보였지만, 정작 그의 얼굴이 plastered된 광고와 발언은 버지니아 유권자들에게 ‘선거 조작’을 막아야 한다는 메시지로 작용했다. 이는 트럼프가 의도치 않게 민주당에 ‘승리’를 안겨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