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국보: 독립선언이 미국을 만든 방법》(Simon & Schuster)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대륙회의 делега트들에게 독립선언은 추상적 이념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7월 2일 독립 투표 후 진행된 행정적 절차이자, 영국 왕과 의회에 맞선 미국의 투쟁을 정당화하고 프랑스를 비롯한 외국으로부터의 지지를 얻기 위한 필수 문서였다.

또한 그것은 창조주를 호소하며 하나의 공동체를 결속시키려는 계약서였다. 이 계약서는 폭정과 맞서고 전통적 권리를 지키기 위해 제정되었으며, 신성한 대의에 근거한 것이었다. 7월 2일과 3일 토머스 제퍼슨의 초안을 수정하던 대륙회의는 그의 논리를 다듬는 동시에 문서의 신성한 근거를 더 명확히 드러냈다.

자연권과 전통적 자유

독립선언은 자연권 이론, 영국.common law, 고전 사상, 유대-기독교 신학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18세기 재산과 학식을 갖춘 엘리트층이 이해하던 자유와 평등의 개념을 담아낸 것이다. 그들은 정부가 부여하는 ‘양적 권리’와 신이 부여하는 ‘자연권’을 구분했으며, 후자는 어떤 정부도 침해할 수 없는 절대적 권리로서 ‘인간의 본질에 따른 권리’라고 주장했다.

이 선언은 왕을 기소하고 모든 humans을 평등하다고 선언한 만큼 급진적이었지만, 동시에 보수적이기도 했다. 자유는 비교적 명확한 개념이었지만, 평등은 제퍼슨의 유명한 문구만큼 단순하지 않았다. 평등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신이 부여한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평등의 한계와 노예제 논쟁

정치적 평등은 신이 부여한 자유를 보존하는 데 필수적이었지만, 그 적용은 절대적이 아니었다. 특히 노예제에 대한 논의는 복잡했다. 제퍼슨의 초안에서 가장 열정적인 부분은 노예무역을 규탄하는 장문이었지만, 노예제 자체를 비판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이 부분은 도덕적 어조를 담고 있었다.

거의 모든 건국세대 지도자들은 노예제를 정치적·도덕적 악으로 여겼다. 노예 소유자였던 조지 메이슨조차 1765년 로마 공화국의 멸망 원인으로 노예제를 꼽으며 “로마 역사가들이 슬프게 묘사한 악”이라고 지적했다. 제퍼슨 또한 『영국령 아메리카의 권리 요약』에서 “유不幸히 식민지 초기부터 노예제가 도입된 곳에서는 국내 노예제의 폐지가 가장 절실한 바람”이라고 썼다.

식민지 사회의 이중적 모순—자신의 자유를 요구하면서도 노예제를 유지하는—은 이미 오래전부터 종교적·정치적 담론의 중심이었다. 건국세대 대부분이 노예제를 비난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노예 소유자였던 이 모순은 미국 혁명의 핵심적 딜레마로 남아 있었다.

출처: Rea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