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4월 26일 오전 1시 23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4호기에서 인류 역사상 최악의 핵사고가 발생했다. 이날 폭발과 melt-down으로 인한 방사능 유출은 소련 체제의 시스템적 실패와 인재(人災)였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사고의 직접적 원인은 안전 테스트 실패로 밝혀졌다. 당시 소련은 발전소의 주전력이 끊어졌을 때, 터빈의 관성력으로 냉각 펌프를 가동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테스트를 진행했다. 그러나 이 실험은 이전 세 차례 실패한 바 있었고, 그 중에서도 가장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소련은 사고 직전까지도 자국 핵발전소의 안전성을 과시하며 서방의 시스템을 폄하했다. 1983년 소련 국영 통신사 노보스티는 핵사고 발생 확률을 100만분의 1로 추정했다고 보도했고, 1984년 전력장관 페트르 네포로즈니(Пётр Непорожний)는 소련 핵발전소를 "완전히 안전하다"고 선언했다. 사고 두 달 전에는 소련의 영어 선전 잡지 가 "만약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자동 제어 시스템이 몇 초 안에 반응해 reactors를 정지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소련의 은폐 시도와 국제적 감지

사고 직후 소련은 사고 사실을 은폐하려 했지만, 서방 국가의 감지 시스템에 걸려 전 세계로 확산됐다. 사고 2일 후 스웨덴 포스마르크 원자력발전소에서 근무자의 오염된 신발이 방사능 경보를 triggered하면서 소련 외부에서 사고가 감지된 것이다. 스웨덴 당국은 바람 패턴과 방사성 동위원소를 분석해 사고 원인이 체르노빌임을 확인했다. 이후 방사능 plume은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서부 러시아는 물론 유럽 전역으로 확산됐다.

사망자 수와 후유증

초기 폭발로 2명의 작업자가 사망했으며, 폭발 직후 3시간 반 동안 reactor 불을 끄기 위해 투입된 소방대원 28명은 이후 3개월 이내 급성 방사능 중독으로 사망했다. 이들의 시신은 настолько 방사능에 오염되어 납 관에 넣고 콘크리트로 밀봉해 매장해야 했다.

체르노빌 reactor의 구조적 결함

체르노빌 사고의 핵심 원인은 소련 시대 reactor 설계의 결함과 인적 오류였다. 체르노빌의 RBMK-1000 reactor(Reaktor Bolshoy Moshchnosty Kanalny, 고출력 채널 reactor)는 흑연과 물을 감속재로 사용해 고속 중성자를 감속시켰다. 이 과정에서 열이 발생해 물을 끓이고, turbines를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구조였다. 그러나 이 reactor는 "positive void coefficient"라는 치명적 결함을 안고 있었다. coolant water가 증기로 변하면서 감속 효과가 감소해 uncontrolled power spikes가 발생한 것이다.

사고 직전 reactor는 700~1,000 MWt(thermal megawatts) 수준으로 안정화되어야 했지만, 테스트 과정에서 과열이 발생하며 사고로 이어졌다.

"체르노빌은 상업용 핵발전 역사상 방사능으로 인한 사망자를 발생시킨 유일한 사고였다. 소련 시대 reactor 설계의 결함과 인적 오류가 결합된 결과였다."
— Nuclear Energy Institute

출처: Rea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