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전설적인 미디어 재벌이자 자선가였던 테드 터너(Ted Turner)가 8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세운 CNN은 cable news의 시대를 열었으며, TBS를 통해 미국 전역에 방송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등 미디어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터너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광고 회사 Turner Advertising Company를 기반으로 방송 사업에 진출했다. 이후 이 회사를 토대로 미국 최초의 전국 방송 ‘슈퍼스테이션’으로 불리는 WTBS를 설립했으며, 이는 CNN 창립 이전부터 텔레비전 산업의 판도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스포츠계에서도 큰 영향력 발휘

터너의 활동은 미디어뿐 아니라 스포츠 분야에서도 두드러졌다. 그는 프로레슬링 단체 WCW(World Championship Wrestling)의 소유주로 활동했으며, 특히 Atlanta Braves(애틀랜타 브레이브스), Atlanta Hawks(애틀랜타 호크스), Atlanta Thrashers(애틀랜타 스래셔스) 등 애틀랜타 지역 스포츠 팀들의 구단주로도 이름을 알렸다.

이 중에서도 특히 주목받는 에피소드는 그가 Braves의 감독으로 잠시나마 활동했다는 사실이다. 1977년 5월 11일, Braves는 개막 후 처참한 성적을 기록하며 16연패를 달리고 있었다. 이날 터너는 당시 감독이었던 데이브 브리스톨에게 10일간의 휴식을 주며 직접 팀을 지휘하기로 결정했다.

“타격 연습을 마치고Bat cage를 나오는데, 테드 터너가Bat cage 뒤쪽으로 걸어왔다. 농담 삼아 ‘테드, 자네는 어떤 포지션을 맡은 거야?’라고 물었더니, 그가 ‘감독이야’라고 대답했다.”

필 니크로(Phil Niekro), 전 Braves 투수이자 명예의 전당 헌액자

터너는 이날 단 하루 동안만 감독으로 활동했지만, 그의 이러한 도전 정신은 스포츠 역사에 한 장을 더했다. 그는 이후에도 Braves의 구단주로 활동하며 팀의 인기와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미디어 혁신가이자 스포츠 애호가

터너의 미디어 사업은 Braves의 방송권 확보로도 이어졌다. 1970년대 그는 남부 지역에 방송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WTCG를 통해 Braves의 경기를 전국에 중계하기 시작했다. 위성 기술의 발전으로 Braves의 경기 중계는 순식간에 200만 가구 이상으로 확산됐고, 이는 터너가 Braves와 Hawks를 인수하는 발판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활동은 controversy를 동반하기도 했다. 1977년 그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외야수 게리 매튜스와의 계약 체결로 MLB 커미셔너 보위 쿠엔(Bowie Kuhn)의 제재를 받기도 했다.尽管如此, 터너는 제재에 항소하며 팀의 운영권을 유지했다.

터너의 legacy는 미디어와 스포츠를 넘어 자선 활동에서도 빛났다. 그는 유엔 평화 친선 대사로 활동하며 국제 분쟁 해결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의 죽음은 미국 미디어와 스포츠 역사에 큰 공백을 남겼다.

출처: SB N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