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 넷플릭스는 파산 위기에 몰려 있었다. 창업자 리드 헤이스팅스와 마크 랜돌프는 블록버스터 임원들을 만나기 위해 댈러스까지 날아갔다. 당시 이야기에 따르면, 그들은 넷플릭스를 5천만 달러에 팔겠다는 제안을 했지만, 블록버스터 측은 코웃음을 치며 거절했다고 전해진다. 굴욕을 당했지만, 두 사람은 오히려 이를 계기로 산업계를 뒤흔들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이 이야기는 ‘다윗 대 골리앗’이라는 구도가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버전으로, 젊은 기업가들이 거대 기업을 이겼다는 서사 구조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사실과 동떨어져 있으며, 블록버스터의 몰락이 2000년 한 회의실에서 내린 전략적 결정에만 달려 있었다는 가정은 터무니없다. 기업의 운명은 상층부에서 내린 단 한 번의 결정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변화에 대한 이해관계자들의Alignment에 달려 있다.

블록버스터가 놓친 기회, 과연 가치 있었을까?

지금 시점에서 돌아보면, 넷플릭스가 2000년 당시 5천만 달러에 팔릴 수 있었던 이유는 납득하기 어렵다. 당시 넷플릭스의 가치는 4천억 달러를 훌쩍 넘는 수준으로 성장했지만, 블록버스터는 이를 간과했다. 그러나 당시 넷플릭스는 우리가 아는 지금의 모습이 아니었다.

헤이스팅스와 랜돌프가 블록버스터를 찾은 이유는 넷플릭스가 심각한 적자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해 넷플릭스는 5천만 달러 이상의 손실을 기록했으며, 구독 모델, 영화 추천 알고리즘, 수익화 모델 등 핵심 사업을 아직 확립하지 못한 상태였다. 유일한 자산은 창업자들뿐이었고, 그들이 최근에 스타트업을_EXIT한 상황이라 장기적인 안착을 기대하기도 어려웠다.

블록버스터의 거절, 합리적인 판단이었을까?

헤이스팅스와 랜돌프가 블록버스터를 찾은 진짜 목적은 회사를 파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넷플릭스를 블록버스터의 온라인 브랜드로 만들려는 협상을 제안했다. 넷플릭스는 블록버스터의 고객 기반을 활용하고, 블록버스터는 자체 온라인 사업을 시작하는 데 드는 비용과 노력을 절약할 수 있는 ‘윈-윈’ 전략이었다.

그러나 블록버스터 입장에서는 이 제안이 매력적이지 않았다. 온라인 사업을 넷플릭스에 맡기면, 블록버스터가 이미 추진 중이던 자체 온라인 사업의 기회를 잃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해 여름 블록버스터는 엔론과 제휴해 자체 스트리밍 서비스를 개발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이 결정은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비슷한 사례인 토이저러스와 아마존의 제휴가 토이저러스의 몰락을 초래했다는 점에서 블록버스터의 우려는 타당했다.

결국 헤이스팅스는 절박한 마음에 회사를 팔겠다는 제안을 했지만, 블록버스터는 이를 거부했다. 그들은 실리콘밸리 기업가들에게 5천만 달러를 지불하는 것보다 자체적으로 온라인 사업을 구축하는 것이 훨씬 저렴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들은 옳았다.

"기업의 운명은 상층부에서 내린 단 한 번의 결정이 아니라, 조직 내 모든 이해관계자가 변화에 얼마나Alignment되어 있는지에 달려 있다."

변화는 상층부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블록버스터의 몰락은 단 한 번의 실수나 잘못된 결정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당시로서는 합리적인 판단을 내렸다. 문제는 그들이 변화의 필요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고, 변화에 대한 조직의Alignment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넷플릭스는 구독 모델, 알고리즘, 콘텐츠 확보 등 핵심 역량을 차근차근 구축해 나갔다. 반면 블록버스터는 변화의 필요성을 늦게 깨달았고, 조직 내부의 저항과 inertia를 극복하지 못했다. 변화는 상층부에서 명령으로 내려지는 것이 아니라, 조직 전체가 공유하는 비전과 목표를 향해 움직일 때 비로소 일어난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한 가지 교훈을 준다. 기업의 성패는 단순히 상층부의 결정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조직 내 모든 구성원이 변화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