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앨라배마주 연방항소법원 제11순회법원(Eleventh Circuit Court of Appeals)은 2017년 로이 무어(Roy Moore) 전 앨라배마주 상원의원이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민주당계 정치단체 ‘Senate Majority PAC(SMP)’가 무어 후보를 겨냥해 내보낸 정치광고가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2017년 무어는 앨라배마주 상원의원 보궐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선거 막바지에 여러 여성들이 무어가 과거 미성년자 시절 성추행을 했다고 폭로했다. 이 사건을 보도한 언론사들은 무어가 1970년대 14세 소녀 웬디 밀러(Wendy Miller)를 상대로 성추행 시도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이에 SMP는 해당 보도를 바탕으로 정치광고를 제작해 수백 차례 방영했다. 광고에는 (1) ‘무어는 gadsden mall에서 미성년자 성매매 soliciting(추행) 혐의로 출입금지 조치를 받았다’는 문구와 (2) ‘무어가 14세 소녀(산타 헬퍼)로 일하던 당시 접근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무어는 이 광고가 자신을 ‘14세 소녀에게 성추행을 시도한 사람’으로 오해하게 만든다고 주장하며 SMP를 상대로 820만 달러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1심 배심원은 SMP의 책임을 인정하고 무어에게 820만 달러의 손해배상을 판결했으나, 항소심 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법원은 SMP의 광고가 ‘명예훼손적 의미(implication)’를 담고 있지 않다고 판단했다.
‘명예훼손적 의미’ vs ‘직접적 명예훼손’
법원은 무어의 주장이 ‘명예훼손적 의미’에 해당한다고 보면서도, 이 경우 ‘의도적 허위사실 유포(intentional falsehood)’ 또는 ‘무모한 무시(reckless disregard)’가 입증되지 않으면 실제 악의(intent to defame)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특히 법원은 SMP의 광고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문구’를 사용했기 때문에 특정 의미를 강요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명예훼손적 의미’는 피고가 사실 관계를 나열해 특정 비방적 의미를 암시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 경우 명시적 진술이 아니라 암시된 의미가 문제되므로, 문구 자체가 여러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따라서 피고가 악의를 가졌는지 여부는 ‘의도적 허위사실 유포’ 또는 ‘무모한 무시’가 입증되어야 한다.
법원은 SMP가 광고를 제작할 당시 무어의 과거 행적을 보도한 언론 보도를 인용했을 뿐, 무어의 악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항소심 법원은 1심 판결을 파기하고 SMP의 손을 들어주었다.
법리적 쟁점과 향후 영향
이번 판결은 ‘명예훼손적 의미’가 법정에서 어떻게 다뤄져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정치광고나 언론 보도에서 ‘암시적 의미’를 문제 삼는 경우, 법원이 이를 어떻게 해석할지에 대한 기준이 clearer(더 명확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무어의 변호인은 이번 판결에 대해 항소할 뜻을 밝히면서, ‘법원이 정치적 편향성을 보였다’고 비판했다. 반면 SMP 측은 ‘민주주의적 선거 과정에서 정당이 정치적 경쟁자를 비방하는 광고를 제한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