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친구 알렉스와 한 ‘네트워킹’ 자리 — 사실상 마케팅 임원이 corporate card로 결제하는 무료 점심 자리 — 에서 우리는 다가오는 프리랜서 기회에 대해 이야기했다. 누가 채용 중인지, 누가 채용 중인 척하는지, 어떤 기업이 ‘핵심 인력’ 운운하며 실상은 인력 감축을 자랑으로 삼는지까지 обсу했다.
계산을 마치던 알렉스가 물었다. “네 실업급여는 얼마나 남았어?” 내가 “신청한 적 없어요”라고 답하자, 알렉스는 마치 ‘오브리 팀’을 지지한다고 말할 때 보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뭐? 신청 안 했다고?” 변명하려던 나는 도중에 내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머릿속에서 실업급여는 형광등이 깜빡이는 정부 지원 시설, 플라스틱 molded 의자에 앉아 번호가 호명되길 기다리는 절박한 사람들만의 전유물이었다. 그건 ‘다른 사람들’이나 받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직장을 잃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을 때, 나는 ‘펀언플로이먼트(실업 상태의 여유로운 삶)’라는 농담을 던졌다. 당시 나는 퇴직금, 저축, 그리고 곧 새로운 직장을 구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감사합니다’라는 이메일을 받을 때마다 슬픔의 5단계를 다시 겪게 된다는 사실을.
당장 돈이 필요하지도 않았고, ‘자격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신청하는 게 부끄럽기도 했다. 진실은 실업급여에 대한 오해였다. 퇴직금이 실업급여 수급 자격을 박탈하는지(박탈하지 않음), 고소득자도 받을 수 있는지(받을 수 있음), 프리랜서도 신청 가능한지(가능하며 조건부) 전혀 몰랐다. 가장 창피한 건 실업보험이 ‘자선’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이론상으로는 알았지만, 실상은 몰랐다. 십대 시절 첫 직장부터 고용주는 내 노동에 연동된 실업보험료를 꼬박꼬박 납부했다. 수십 년간. 매 paycheck, 매 W-2, 매 승진, 매 ‘기회’라는 이름의 해고 통보. 알렉스가 말했다. “너희가 그동안 보험료로 3만 달러 넘게 납부했을 거야. 왜 남의 호의를 구하는 것처럼 굴어?”
그때 깨달았다. 내 저항은 경제적 문제가 아니었다. 심리적 문제였다. 실업급여 신청이 곧 ‘실패’라는 낙인이었다. 신청한다는 건 ‘다른 부류의 사람’이 된다는 의미로 느껴졌다. 도움을 기다리는 사람, 점심 모임을 주선하고 경력 조언을 해주는 사람과는 다른 존재 말이다. 하지만 실업급여는 낙인이 아닙니다. 보험입니다. 당신의 노동이 당신의 안전망을 만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