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야구장 한 곳의 인원만큼 사망하는 미국 교통사고
미국의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실감나게 보여주는 통계가 있다. 마이애미 말린스 야구단의 홈구장인 론디폿 파크(LoanDepot Park)의 공식 관중석 규모는 36,742석이다. 이는 매년 미국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인원과 거의 같다. 다시 말해, 미국은 매년 야구장 한 곳의 인원이 사망하는 수준의 교통사고로 인해 생명을 잃고 있는 것이다.
자율주행차, 사망자 감소의 해법으로 주목받아
이 같은 비극을 해결할 수 있는 기술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 바로 자율주행차다. 자율주행 기술은 인간의 실수나 과속, 졸음 운전 등을 배제해 교통사고 사망자를 크게 줄일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 그러나 이 기술은 안전성 논란과 일자리 문제, 지역 정치권의 반발 등으로 도입이 더뎌지고 있다. 특히 워싱턴 D.C.와 보스턴 등 주요 도시에서는 노조와 지역 정치인들의 반대로 자율주행차의 상용화가 지연되고 있다.
의회, 자율주행차 규제 법안으로 엇갈린 입장
미국 의회는 이제 자율주행차의 안전 기준과 운영 방식을 규정할 법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현재까지 발의된 법안은 두 가지로, 서로 상반된 방향성을 띠고 있다.
SELF DRIVE Act: 제조사 자율성 강화로 신속한 상용화 촉진
하원에서는 SELF DRIVE Act가 발의됐다. 이 법안은 자율주행차(AV)의 첫 연방 안전 규정을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제조사가 ‘safety case’ 기준에 따라 자체 인증하도록 허용: 이는 시스템이 사고 위험을 합리적으로 방지할 수 있음을 입증하는 근거 기반의 주장
- 현재 2,500대에서 9만 대로 상한선 완화: 제조사가 더 많은 자율주행차를 도로에 내보낼 수 있도록 규제 완화
이 법안은 지난 2월 하원 소위원회에서 12대 11로 통과됐으나, 본회의 표결 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Stay in Your Lane Act: 안전 조건 엄격화로 무분별한 상용화 저지
상원에서는 민주당 소속 에드 마키(매사추세츠) 및 리처드 블루멘탈(코네티컷) 상원의원이 Stay in Your Lane Act를 발의했다. 이 법안은 자율주행차의 안전 운영 조건을 엄격히 규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 ‘운영 설계 영역(ODD)’ 정의 강제: 시스템이 안전하게 운영될 수 있는 조건을 명확히 규정하고, 그 범위를 벗어난 운행을 금지
제조사는 시스템이 안전하게 동작할 수 있는 조건(예: 날씨, 도로 상태, 시간대 등)을 사전에 공개하고, 그 범위를 벗어난 상황에서는 자율주행 모드를 해제해야 한다.
‘.bootleggers and Baptists’ 이론으로 본 규제 전쟁
이 같은 법안 대립의 이면에는 ‘bootleggers and Baptists’라는 경제학 이론이 적용된다. 이 이론은 규제 입법 과정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으로,“道덕주의자(Baptists)”와 “밀수업자(bootleggers)”가 손을 잡고 규제를 주도하는 경우를 설명한다. 도덕적 명분을 내세우는 세력이 규제의 공공성을 높이는 역할을 하고, 실질적 이익을 얻는 세력이 정치적 힘을 행사하는 것이다.
자율주행차 규제에서도 유사한 구도가 나타나고 있다. 두 법안 모두 안전성을 내세우고 있지만, 각각의 지지층은 상반된 이해관계를 드러낸다.
SELF DRIVE Act의 지지층: 기술 혁신과 산업 성장
SELF DRIVE Act의 ‘Baptists’ 역할을 하는 이들은 기술 혁신과 산업 성장을 앞세운다. 이들은 자율주행차의 빠른 상용화가 교통사고 사망자를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bootleggers’ 역할을 하는 이들은 제조사, 특히 테슬라와 Cruise 같은 기업들로, 규제 완화를 통해 시장을 선점하고자 한다. 이들은 규제가 느슨할수록 신기술 도입이 빨라져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본다.
Stay in Your Lane Act의 지지층: 안전과 책임 강조
반면 Stay in Your Lane Act는 안전과 책임을 강조하는 세력이 ‘Baptists’ 역할을 한다. 이들은 자율주행차가 아직 완벽한 안전성을 확보하지 못했다며, 무분별한 상용화를 반대한다. ‘bootleggers’ 역할을 하는 이들은 전통 자동차 제조사나 보험업계로, 엄격한 규제가 기존 시장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자율주행차의 무분별한 확산이 오히려 시장의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 안전 데이터는 어디에? 규제 논의는 데이터보다 이해관계에 치우쳐
흥미로운 점은 두 법안 모두 실제 안전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논의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자율주행차의 안전성은 아직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지만, 규제 완화를 주장하는 측은 사망자 감소 효과를, 규제 강화를 주장하는 측은 안전성 미비 문제를 앞세우고 있다. 그러나 양측 모두 객관적인 안전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중립적인 논의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규제 입법 과정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해관계가 데이터보다 우선시되는 경우가 많다. 자율주행차의 경우에도 기술 개발 속도가 규제 마련보다 빨라, 정치권이 실질적인 안전성 검증을 건너뛰고 이해관계에 따라 법안을 추진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규제는 누가 위한 것인가?
자율주행차 규제 전쟁의 핵심은 ‘안전’이 아니다. 이는 기술 혁신과 산업 성장, 기존 시장의 보호, 그리고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문제다. 두 법안 모두 안전성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제조사, 정치인, 노조, 보험업계 등 다양한 이해관계가 존재한다.
미국이 매년 야구장 한 곳의 인원만큼의 생명을 잃고 있는 상황에서, 자율주행차는 분명 유용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기술이 그 잠재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규제가 기술 개발과 조화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규제 전쟁은 단순히 이해관계를 위한 싸움으로 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