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아빠 게임’이란 무엇일까? 이 용어는 2010년대 게임계에서 유행한 클리셰를 가리킨다. 폭력적인 과거를 지닌 주인공이 자녀(혹은 유사 역할)를 보호하며 후회와 불안에 시달리는 스토리 구조가 반복됐다. The Last of Us의 조엘, God of War의 크라토스, The Walking Dead의 리는 이 클리셰의 대표적인 예시다. 이들은 모두 폭력적인 과거를 지닌 채 보호해야 할 대상과 함께하며, 폭력의 반복에 대한 죄책감을 드러낸다. 마치 1980년대 헤비메탈 밴드가 1990년대 포스트 그런지로 변신한 것처럼, 기존의 폭력적 판타지를 유지하면서도 ‘슬픔’을 강조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프라그마타는 이 클리셰에서 벗어나 있다. 이 게임은 기본적인 설정은 비슷하다—성인 남성 휴 휴스가 어린아이 형태의 로봇 다이애나와 함께 달 기지 내 AI-controlled 살인 로봇과 싸운다. 그러나 휴는 ‘슬픈 아빠’가 아니다. 그는 과거의 폭력에 대한 죄책감도, 보호 대상에 대한 과도한 책임감도 없다. 오히려 그는 차분하고 안정적이며, 폭력 자체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다. 그가 쏘는 대상은 끊임없이 재활용 가능한 3D 프린팅 로봇일 뿐, 실제 인간은 아니다.
‘잘 정돈된 가족 친구’로서의 휴 휴스
프라그마타의 가장 큰 특징은 휴의 성격이다. 그는 과거의 폭력에 대한 언급도, 보호 대상에 대한 과도한 걱정도 없다. 그가 다이애나에게 주는 조언은 ‘좋은 사람’이 되는 법에 대한 실용적인 조언일 뿐이다. 예를 들어, 그는 다이애나에게 “다른 사람을 돕는 법”이나 “진실하게 행동하는 법”을 가르친다. 이 조언들은 게임 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며, 휴의 캐릭터성을 돋보이게 한다.
또한, 휴는 입양된 과거를 가지고 있다. 그는 다이애나와 대화를 나눌 때 이 사실을 언급하며, 자신이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이 설정은 단순히 배경 스토리를 넘어, 휴의 인격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슬픈 아빠’ 클리셰를 거부하는 이유
프라그마타가 ‘슬픈 아빠’ 클리셰를 거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휴는 과거의 폭력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폭력에 대해 반성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을 ‘필요한 일’로 받아들인다. 둘째, 그는 보호 대상에 대한 과도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다이애나는 휴의 보호가 필요 없는 존재이며, 오히려 휴는 다이애나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 셋째, 그는 ‘슬픔’을 강조하지 않는다. 그는 차분하고 안정적이며, 자신의 감정을 과장하지 않는다.
이러한 특징들은 프라그마타가 ‘슬픈 아빠’ 클리셰를 벗어나 ‘잘 정돈된 가족 친구’ 같은 새로운 캐릭터 유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휴는 과거의 폭력과 입양이라는 복잡한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슬픔’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그것을 바탕으로 더 나은 관계를 형성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프라그마타의 메시지
프라그마타는 단순히 ‘슬픈 아빠’ 클리셰를 거부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 게임은 ‘좋은 사람’이 되는 법, ‘진실한 관계’를 맺는 법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휴와 다이애나의 관계는 보호와 책임이 아닌, 상호 존중과 배려를 바탕으로 한다. 이 메시지는 게임 내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지며, 플레이어에게도 큰 울림을 준다.
결국, 프라그마타는 ‘슬픈 아빠’ 클리셰를 벗어나 새로운 캐릭터 유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휴는 과거의 폭력과 입양이라는 복잡한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슬픔’이 아닌 ‘성장’의 기회로 삼는다. 이 게임은 단순히 폭력적인 스토리를 넘어, ‘좋은 사람’이 되는 법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며, 플레이어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