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비트코인 ETF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새로운 문제가 부상하고 있다. 투자자에게 ‘메인스트림 금융과 같은 포장’을 제공한다는 약속으로 시작된 ETF는 자산운용사(AMC)·준거기관·기관투자자 모두에게 익숙한 형태로 자리 잡았다. 2024년 4월 기준 미국 스팟 비트코인 ETF의 총자산은 91조 7천억 원에 달했지만, 이 중 상당 부분이 단일 수탁사인 코인베이스에 집중되어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수탁사 집중’ 문제는 이제 ETF 산업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4월 20일, 그레이스케일이 새로 제출한 하이퍼리퀴드 ETF 신청서에서 수탁사를 코인베이스에서 앤커리지 디지털뱅크로 변경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는 단순히 새로운 ETF 상품의 수탁사 변경을 넘어, 규제된 비트코인 ETF 시장이 단일 백오피스 게이트키퍼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신호로 해석된다.
크립토슬레이트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 코인베이스를 수탁사 또는 주 수탁사로 명시한 ETF의 총자산은 77조 1천억 원(84.1%)에 달한다. 이 수치는 ‘다중 수탁사 구조’나 ‘분산 배분’ 등을 제외한 엄격한 기준으로 계산하더라도 약 74조 6천억 원(80.8%)이 여전히 코인베이스에 집중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수치는 비트코인 ETF에 대한 기관투자 수요가 수탁사 선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코인베이스의 독점적 지위와 그 배경
ETF 붐이 일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코인베이스 수탁사 독점’은 여러 실용적 이유에서 시작됐다. 2024년 1월 스팟 비트코인 ETF가 승인된 후, 발행사들은 규제 준수 이력·기관 운영 역사·감사·시장조성자·규제기관에 credible한 인프라를 갖춘 수탁사를 필요로 했다. 당시 코인베이스는 이러한 조건을 가장 잘 충족하는 기업으로 꼽혔다.
한 번 선택된 수탁사는 시장의 ‘표준 템플릿’이 됐다. 대형 발행사들이 코인베이스를 선택하자, 후발 주자들은 이를 따라 같은 인프라를 활용하는 구조가 정착됐다. 예를 들어 모건스탠리는 3월 제출한 비트코인 ETP 신청서에서 코인베이스 커스토디와 BNY를 수탁사로 명시했으며, 이후 모건스탠리 비트코인 트러스트로 출시됐다. 이 같은 ‘표준화’가 금융 인프라의 집중화를 심화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규제 승인과 수탁사 경쟁의 변화
코인베이스의 규제적 입지가 강화되면서 그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4월 2일, 미국 통화감독청(OCC)은 코인베이스 내셔널 트러스트 컴퍼니 설립을 조건부로 승인했으며, 이는 코인베이스가 전통 금융권과 동일한 규제 틀 안에서 운영될 수 있음을 의미했다. 이러한 변화는 수탁사 선택의 기준을 한층 엄격하게 만들었다.
전문가들은 “단일 수탁사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 시스템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며 “그레이스케일의 선택이 새로운 흐름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아직 한 건의 신청서 변경을 두고 ‘트렌드 변화’라고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ETF 산업이 ‘포스트 코인베이스’ 시대를 준비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발행사·변호사·이사회는 대체로 안전한 템플릿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 한 번 변화가 시작되면 다른 발행사들도 유사한 선택을 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ETF 시장이 성장하면서 수탁사 선택은 단순히 기술적 결정이 아니라 리스크 관리와 규제 준수의 핵심 요소로 부상했다. 앞으로는 다중 수탁사 구조나 대체 수탁사 도입이 점차 늘어나면서 인프라의 다변화가 진행될 것이다.”
— 암호자산 분석가 A씨
향후 전망: 수탁사 다변화와 규제 강화
시장 전문가들은 앞으로 ETF 발행사들이 수탁사 선택을 다변화할 것으로 예상한다. 특히 기관투자자들이 ‘단일 실패 지점’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다중 수탁사 구조나 대체 수탁사의 도입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또한 규제 당국도 수탁사 선택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그레이스케일의 선택이 시장의 ‘시그널’이 될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비트코인 ETF 시장이 ‘성숙 단계’로 접어들면서 인프라의 안정성과 다변화가 필수 요소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곧 월스트리트 전체가 ‘포스트 코인베이스’ 수탁 구조를 재편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